이렇게 작은 교회가 이런 큰일을!!!
지금부터 10여년 전까지 써리한인교회에는 매년 7월이면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몰려오는 150여명의 청년들의 찬양과 기도소리가 뜨거웠습니다. 원주민 선교를 위해 우리 교회 청년들은 물론 한국의 경기 노회, 안산 동산교회, 수피아 여고 학생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각 교회에서 모인 청년들을 섬기며 지원하느라 온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수고를 아 낌없이 감당하곤 하였습니다.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는 작은 모듈라 하우스 형식의 건물이었지만 그 곳에 발디딜 틈없이 들어가 찬양과 기 도의 눈물과 땀방울이 뒤엉켜 뜨겁게 예배하고 훈련받고 밤이 되면 자원 하여 집을 개방한 성도들의 가정으로 흩어져 하루밤을 보내고 다시 모여 선교를 준비하고 훈련 3일째 새벽에 20여대의 밴으로 나뉘어져 20여 마을로 선교팀을 파송하였습니다. 트레이닝 캠프 3일 동안은 150여명을 위해 하루 3끼의 식사 준비 및 제공, 각 마을로 보내어질 음식 재료 준비와 자동차 렌트, 각종 행정업무 진행 및 운전 등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유초등부 어린 아이부터 에녹회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기쁨으로 감당했었습니다. 그 이후 트리니티웨스턴대학교로, 그리고 콜롬비아바이블 컬리지를 거쳐 서미트 패시픽 컬리지로 트레이닝 센터를 옮겨가며 단기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팀들을 준비시키고 도와 왔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한국에서 오는 청년들을 공항에서 픽업하여 교회로 오면서 그 청년들에게 원주민 선교와 써리한인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 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한국과는 다른 넓은 들판과 멀리 지평선 너머에 솟아있는 산들, 그리고 푸르른 숲들을 바라보며 이제 곧 있어질 원주민 선교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벅찼을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에 도착하여 집을 풀며 어떤 한 청년이 중얼거렸던 말이 지금도 저의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요즘, 문득 그 청년의 그 말이 떠오르며 다시금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교회가 이런 큰일을!!!” 그 청년들 생각에 150여명 규모의 단기선교팀을 운영하고 지원하고 훈련시켜 파송하는 교회라면 대형교회 정도는 될 것이고 모든 것이 잘 조직되고 갖춰진 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교회당에 도착해 보니 작고 초라한 “하꼬방” 같은 예배당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던 것에 놀라서 했던 말이었을 겁니다. 분명 교회당은 작고 성도들의 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온 교회가 한마음으로 주의 사역을 감당할 때, 그런 우리 교회를 보면서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교회 크기를 넘어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요즘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그 때 그 청년의 말이 다시금 생각납 니다. 다시 한번 우리 교회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초대 교회의 역사를 이루가게 되길 기도하게 됩니다. 어떻게 저런 작은 한인교회가 지역 사회와 이 땅에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을 치유하는 큰 일을 감당하는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교회가 될 것 을 기도하며 기다리며 기대합니다.   (2023년 6월 4일)
2024-04-12
교회여, 일어나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 속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때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이길 힘을 얻습니다. 찬양하며 캄캄한 빌립보 감옥 중에 임하였던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하기도 합니다. 몇 년전 몇몇 교회 분들과 매주 토요일 저녁에 모여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시간을 갖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함께 부르며 찬양의 가사와 같은 일들이 우리 교회 가운데 이루 어지길 눈물로 기도했던 찬양입니다. 지금도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그 때와 같은 동일 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 때 눈물로 함께 부르며 기도했던 그 기도와 찬양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주님의 빛을 비추며 주님을 나타내게 하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우리 안에 이런 간증이 담긴 찬양의 고백이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그 찬양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여, 일어나라 교회여, 일어나라. 주께서 부르시니 두려움과 실패 내려놓고 교회여, 일어나라. 교회여, 일어나라. 주께서 보내시니 우릴 부르신 삶의 자리에서 교회여, 일어나라. 우린 세상의 빛 (어둠을 밝히는) 하나님의 편지 (주를 나타내는) 주의 교횔 통해 (우릴 통해) 세상이 주를 보리라. 일어나라. 아버지 사랑으로, 아버지 능력으로 서로 하나되어 그 빛을 비추라. 노래하라. 아버지의 사랑을, 아버지의 크심을 이 삶의 노래로 주님을 나타내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공동체인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 자신들이 주님이 부르신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의 빛을 발하며 주님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2023년 5월 7일)
2024-04-12
6월은 기도의 달!!
지난 주일 당회에서 6월 한달을 기도의 달로 정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6월은 교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목사님 청빙과 함께 교회가 3대 담임 목사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청빙을 진행하는 일은 어쩌면 간단한 일일 수 있지만 한 분의 목사님을 청빙하고 위임하여 세우는 일은 이 시대 속에서 교회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에 지 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향후 지리적으로 더욱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몇 년 후면 교회 옆으로 스카이 트레인이 지나가고 인근에 전철 역이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세워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어 교회 주변으로 몰려 들 것입니다. 이 때를 바라보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우리가 경험했던 시대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 될 것입니다.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급변하고 있고 사람들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도 이에 맞춰 재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픈 AI, 챗 GPT 등이 현실 속에서 실재화되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 속으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강제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하면 그 역할을 감당하여 말씀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이 시대의 상황을 해석하고 세상을 담아 낼 수 있는 목회자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 기 위해 하나님과 시간 보내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 시대를 분별하여 교회의 목표를 설정하고 비전과 목표를 성도들과 나누며 이 목표를 성취하도록 돕기 위해 각 성도를 온전하게 말씀으로 무장시킬 수 있는 분,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가득한 분, 성도들의 눈과 눈을 마주보고 손과 손을 마주잡고 그 마음의 아 픔과 상처를 바라보고 눈물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하며 우리가 지금 기도할 때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이 함께 의논하여 6월 한달을 기도의 달로 정하였습니다. 기도 작정서를 주보 사이에 끼워서 나 누어 드렸습니다. 교회의 리더들이 솔선하여 기도하는 일에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목장의 식구들을 권면하여 함께 기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도 가운데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마음이 부은 바 되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가장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LOVE NEVER FAILS!!   (2023년 5월 28일)
2024-04-11
세상에 이런 교회가 있을까?
진정한 예배가 숨쉬는 교회,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믿음의 기도가 쌓이는 교회,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성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과 헌신이 기쁨이 되어 열매맺는 아름다운 교회 주님의 마음 닮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빛되신 주님 전하는 교회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 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2008년에 발표된 “소리엘 클래식” 음반에 실려 발표된 찬양으로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불려지고 있는 찬양입니다. 며칠 전 금요 기도회 시간에 함께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이런 교회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다가 문득 “이 세상에 이런 교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한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청년 시절에 나의 믿음의 기초를 닦았던 교회였습니다. 100여명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예배 때마다 새롭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영혼들이 세워지던 교회, 여름 방학 동안 귀한 시간을 드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가난한 지체들의 대학 등록금을 내어 주던 교회, 동네 독거노인들의 가정을 매주 방문하여 청소하고 먹거리를 제공해 주며 섬김의 삶을 살아내던 교회, 밤새 말씀을 묻고 답하며 우리 삶에 말씀이 흥왕케 되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어 가던 그 교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져 가는 것에 함께 뜻을 모으며 눈물로 기도하 던 그 교회, 직장을 다니는 지체들이 솔선하여 매월 월급의 일정 금액을 헌금하여 선교사를 직접 파송하며 후원하던 선교 공동체, 매년 마다 선교사로, 목회자로 헌신을 결단한 사람들이 서너명씩 세워지던 그 교회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나의 청년의 때에 그 교회에서 배움의 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제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 써리장로교회에 그런 모습이 다시 한번 재현되는 부흥 (REVIVAL)을 꿈꾸게 됩니다.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써리교회가 이런 교회되게 하소서” 오늘도 이 찬양을 흥얼거리며 그 찬양에 기도의 마음을 담아 불러 봅니다. 이런 교회가 이 곳에,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 행 19:20 - https://youtu.be/fOV0Rijw2to?si=2qwyl6qi8jG8qCOy (2023년 5월 21일)
2024-04-11
교회를 섬기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교회의 어려운 형편과 상황에 함께 마음을 모으고 사랑의 수고를 자발적으로 감당하시는 모습에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습니다. 무너져 버린 바위 틈에 갇혀 꺼져 가는 가느다란 숨을 겨우 내쉬던 답답함에서 벗어나 여전히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숨도 한모금 제법 배부르게 쉬어 보며 조금씩 생기를 되찾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작고 강한 교회’ (칼 베이터스 저)입니다. 북미 전체 교회의 80%가 100명 미만이고, 90%가 200명 미만이라고 하는데 이 곳 밴쿠버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 작은 교회는 부흥(Revival)이 아니라 생존 (Survival)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습 니다.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를 함께 나누고 생각해 보고자 주제 넘게 이 글을 올립니다. 우리가 지난 몇 년동안 실패했던 일들을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움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람들은 큰 집단에 있을 때와 작은 집단에 있을 때 다르게 기능합니다. 집단이 클수록 익명성, 수동성이 커집니다. 큰 교회는 비전과 프로그램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개인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작습니다. 그러나 작을수록 더 독특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현저히 줄어들고, 개인의 특성이 전체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문제의 양상이 동일한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만큼 복잡합니다. 소수의 부정적 영향이 전체에 파급되기도 하고, 한 두 가정만 교회를 떠나도 어떤 사역이 중단되거나 재정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패배적인 생각과 자기 교회는 아주 특별하다는 자기 변호에 익숙해지고, 큰 교회에 대해서는 이유없이 부정적 시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숙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 중에 핵심은 ‘관계’입니다. 관계의 어려움과 실패는 조직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일인데 이것은 작은 교회에게는 훨씬 치명적입니다. 작은 교회의 성패는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 친밀감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목회자와 교회의 리더십, 어른들이 보여주는 관계, 문화와 습관이 지대한 영향을 교회 전체에 끼치게 됩니다. 사역을 잘하면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잘못되면 사역의 성취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입니다. 리더십들이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만 해도 교회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참아주고 세워주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갈라진, 벽이 있는,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이 우선적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이 목적이 아니고,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궁극의 목적인 것을 고백하는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관계의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 이상은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큰 조직, 큰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실수와 잘못이 조직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입니다. 1,000명의 교인이 있는 교회에서 어떤 리더가 실수로 연약한 교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전체 조직의 5% 미만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 조직은 익명성과 수동성 이 크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0명 미만의 작은 교회에서 교회의 리더십 중 한 사람이 특별한 의도를 담지 않은 가벼운 말 실수로 함께 하는 다른 리더십에게 상처를 주어 서로간에 말다툼이 발생했다면 그것으로 영향을 받는 관계는 교인 전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일수록 관계의 벽돌을 소중하게 쌓아 가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시지만 나보다 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동역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늦게 가면 어떻습니까? 다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잘 감당하셨으니, 앞으로도 작은 교회이지만 주님과 함께 똘똘 뭉쳐 세상의 큰 바위를 깨부수는 “작고 강한 교회”로 우리 교회가 자라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2023-04-23)
2024-04-11
인생은 신호등
몇 년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2024년 한 해동안 나의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야할까 고민하다 이 글을 다시 꺼내읽으며 올 한 해를 생각해 봅니다. “교통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 차선에 멋진 청년이 붕~! 붕~! 부~웅==33!! 요란하게 자동차의 악셀레이터를 밟고 있다. 마치 100미터 출발선에서 출발 총소리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처럼.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자마자 총알처럼 달려 저만치 앞서간다... 그 차 뒤 꽁무니에는 한마리 말(Horse) 로고가 붙어 있다. 옆에 타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뭐가 그리고급하나?그리도급하면어제출발하지""??"가다보니또신호등에걸렸다.아까그멋진청년이머플러소리를 울리며 신호가 바뀔 때를 기다리며 또 옆차선에서 붕~! 붕~! 부~웅==33!! 요란하게 출발 총소리를 기다린다. 앞에 가던 다른 차를 제치고 차선을 요리 조리 바꿔가며 달려 나간다. 에휴... 한발 먼저 달려가도 다음 신호등에서 또 걸릴 텐데..이땅에서제아무리빠르고멋지게달려본들인생마지막날,빨간신호등앞에서다같이만날껄..뭐그리기를 쓰며 악셀레이터를 밟으며 저렇게 달려갈까? 교통 신호와 법규를 지켜가며 여유있게 여행을 하면 더 많은 볼거리와 경치들을 즐길 수 있을텐데... 신호등 앞에서 문득 인생이 떠올려진다. 말씀의 인도 하심을 따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살피며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기쁜 사람과 함께 즐거워 하는 여유를 가지면 운전이 더 재미질텐데... “인생은 신호등이다... 짜샤!!” 너무 빡쎄게 살지 맙시다. 다음 신호등에서 다같이 만날껄.. ᄒ” 2024년 한해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다 창문 너머 깜빡대는 교통 신호등를 보면서 다시금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무엇”과 “어떻게”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누구이고 누구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인가”를 잊지 말아야겠다는생각이듭니다.주님이가라하시면가고서라하시면멈추어서서주님의다음말씀을잠잠히기다리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이 마치는 12월의 어느 날, 한해 동안 주님 앞에서 주님의 자녀로 살아 온 인생의 흔적들을돌아보며하나님께감사드릴수있는한해가되길소원합니다.주님!2024년한해동안주님앞에서,주님이 가라하시면가고서라하시면가던길멈추고그자리에서서주님의다음신호를기다릴수있는인내의마음과믿음의 결단력을 우리게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시옵소서. 코람데오!!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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